***** 그날 일은 생각이 짧았다고, 사실은 돈이 좀 필요하니 말씀하신 대로 하겠다고 무릎을 꿇어오는 윤수를 앞에 두고 장수철은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이제 애가 타게 된 쪽은 윤수가 되었으니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초조한 마음으로 대답을 기다리던 윤수의 앞으로 한참 만에 장수철이 무언가를 툭 던졌다. 슬며시 고개를 들어보니 한 뼘쯤 앞에 차 열쇠가 하나...
***** 쾅쾅쾅. 잠결에 들려온 갑작스러운 굉음에 윤수가 화들짝 눈을 떴다. 몽롱한 정신에 이 상황이 꿈인지 생시인지 퍼뜩 분간이 되지 않았다. “문 열어, 이 새끼야!” 엄청난 기세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고성이 이어졌다. 그제야 윤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떤 새끼…… 인지 짐작이 갔다. 목소리의 주인은 윤수가 현관을 향해 느릿느릿 걸음을 옮...
“선, 윤, 수.” 장수철이 윤수의 이름을 한 글자 씩 또박또박 끊어 부르며 술 주전자를 들었다. 윤수는 말없이 잔을 내밀었다. “내가 여태 이런 일 하면서…… 이거만큼은 자신 있다 하고 내세울 수 있는 건 딱 하나야.” 윤수에게 술을 따른 뒤 스스로 자신의 잔도 채운 장수철이 곧장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사람 보는 눈.” 장수철이 눈에 잔뜩 힘을 준 ...
***** 뺨을 툭툭 건드리는 손길은 어쩐지 썩 유쾌하지가 않았다. 꿈인가 싶어 무시하고 다시 잠에 들려고 했으나, 규칙적인 그 두드림은 좀처럼 그칠 줄을 몰랐다. 윤수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슬며시 눈을 떴다. “이건 뭘 이렇게 세상모르고 처자냐…… 어이, 그만 좀 일어나지?” 손가락의 주인인 듯한 이가 중얼거렸다. 그제야 이상한 낌새를 느낀 윤수가 벌떡...
***** “네가 어딘가에 숨어 있는 건 어때?” “무슨 말이에요?” 하경이 보던 책에서 눈을 떼고 물었다. 하경의 무릎을 베고 누운 윤수가 그런 하경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 놈들이 오면 어딘가에 숨어 있는 거야…… 그리고 나랑 놈들이 내려가면 그 뒤를 밟는 거지, 너는.” “당연히 오자마자 나부터 찾지 않겠어요?” “자고 일어나니 없더라고 하지 뭐.”...
***** “호오, 꽤 하잖아요?” 고기를 굽고 있는 윤수의 옆에 쭈그리고 앉아 불 속에 넣은 감자를 굴리던 하경이 말했다. 자긴 고기 굽는 덴 재주가 없다며 불만 피워 놓고 쭈뼛쭈뼛 물러서는 걸 본 윤수가 집게를 들었던 것이다. “그냥 굽는 건데 뭘. 잘하고 못하고가 어디 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동경의 눈빛을 반짝이며 저를 올려다보고 있는 하경을 보...
“형이, 하나 있었어요. 지금은 죽고 없지만. 신일회에서 일했는데…… 나는 몰랐어요. 죽고 나서 알았어요.” 한참 침묵을 지키던 하경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마치 남의 일을 고하듯 감정이라고는 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형이 다쳤으니까 빨리 병원에 오라고…… 연락을 받고 갔더니 이미 온 몸이 피떡이 되어 있었어요. 병원은 아예 통째로 걸어 잠겨 있었고...
***** “그러니까, 그 새끼 이름이 장진태라고?” “네.” 하경이 대야 가득 담긴 빨래를 꾹꾹 밟아 누르며 대답했다. 날씨가 좋으니 미뤄놨던 빨래를 해야겠다며 아침 일찍부터 밖으로 나온 참이었다. 며칠 비가 많이 왔던 탓에 물탱크에 물도 가득 차 있었다. 날씨도 좋고, 물도 많고, 빨래하기에 너무 좋은 조건이잖아요. 빨랫줄을 치며 한참 실없이 웃음을 감...
윤수는 문이 닫힌 방안에 누워 바깥의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전에 왔던 녀석의 목소리 외에 다른 목소리들도 두어 개가 섞여 있었다. 녀석과 하경이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으나 무언가가 쿵쿵대는 소음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는 들을 수가 없었다. 뭔 소리야, 그게. 말이 돼?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갑자기 놈의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하경의 웅얼대는 소리가 ...
***** 품 안에서 무언가 꾸물거리는 감각에 윤수가 잠에서 깼다. 맨살에 와 닿는 가느다란 숨이 간지러웠다. 윤수는 한쪽 다리를 들어 하경의 몸을 감고는 제 쪽으로 더욱 바싹 끌어안았다. 으으. 하경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 나왔다. “일어, 났어요?” 단순한 인사일 뿐인데도 그 목소리를 들으니 어쩐지 주책도 없이 웃음이 났다. 윤수는 눈도 뜨지 않은 채 하...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