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리님, 잠깐만.”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겨우 조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정리를 할 무렵이었다. 선재가 갑자기 영우를 불렀다. “이거.” 영우가 선재에게 다가가자 그가 서류 파일 하나를 건넸다. 디에이 리조트 인수 계획서. 서류의 제목을 확인한 영우가 선재를 다시 쳐다보았다. 회사에서 조만간 이 리조트를 인수할 예정이라는 것은 영우도 알고 있었...
“어이, 윤댈!” 밤새 잠을 못 자 반쯤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지만 입점사 현황 분기 마감 때문에 오전 내내 지하 2층부터 훑어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김 주임도 함께여야 했지만 오늘이 드디어 패일 스톤즈의 오픈 일이라 김 주임은 자신보다 더 바빴다. 영우는 저를 부르는 게 대충 누구의 목소리인 줄 알 것 같아 느릿느릿 고개를 돌렸다. “우와...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끈질기게 조르는 현진을 겨우 떼어낸 영우는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곧 세주가 독서실에서 돌아올 시간이었다. 세주보다 먼저 도착해서 일찍 들어온 척 해야지. 스스로의 계획에 만족한 영우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선 뒤 자연스레 제 집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으로 옮길 때였다. 입구 앞에 늘어선 차 중에 유독 ...
변한 게 없다. 영우는 맞은편에 앉아 팔까지 걷어붙인 채 열심히 고기를 굽고 있는 현진을 보며 그 말에 담긴 무거움을 곱씹어 보았다. 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현진은 그다지 변한 것이 없었다. 기름이 많은 쪽을 좋아하지 않는 영우를 위해 요령 있게 고기를 조각내고 자신의 앞 접시에 나르는 모양이 꼭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예전과 똑같았다. 영우는 괜히...
“아니, 여기는 건너뛰고 그 다음부터 작성하면 돼. 이 부분은 나중에 홍보팀에서 자료 보내주면 업데이트하면 되니까.” “아아, 네네.” 김 주임이 멀거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메모를 하는 게 좋을 텐데. 속으로 생각했지만 영우는 굳이 말로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앞으로도 자신이 계속 확인을 해줘야 할 게 뻔했다. 이래서 웬만하면 김 주임에게는 일을 넘...
“…… 삼촌, 눈 좀 떠봐.” 가볍게 몸이 흔들리는 느낌에 잠이 깬 영우가 눈을 떴다. 희미한 시야 사이로 세주의 얼굴이 조금씩 뚜렷해졌다.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어어어…… 몇, 시……야?” “정신 들어? 일어날 수 있겠어?” “어, 괜, 찮아. 일어날 수…… 있어.” 대답을 증명하려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도저히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종일 초조하게 시계만 확인하던 영우가 마침내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거운 마음 탓에 움직임마다 긴 한숨이 따라붙었다. 한참 전에 마련해둔 서류는 따로 챙길 것도 없이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게 또 심란하여 다시 짧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대리님, 왜 그러세요. 오늘 계속 한숨만 쉬시고. 무슨 일 있으세요? 제가 뭐 좀 도와드려요?” 참다 못...
“그래서, 어떡할 건데?” 말을 마친 주현이 잔을 꺾어 남은 술을 한 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곧장 바텐더를 불러 제 빈 잔을 가리키며 싱긋 웃어 보였다. “뭐를. 어떡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 영우가 턱을 괸 채 빙글빙글 잔을 돌리며 말했다. “걔가 그렇게 말했다며, 찾으러 갈 거였다고. 무슨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너를 버려. 우리 영우같...
“먼저 들어갑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퇴근 시간에 정확히 맞추어 자리를 뜨는 선재를 보며 영우도 하던 일을 슬슬 마무리했다. 점심 때 있었던 일 때문에 동요가 되어 오후 내내 제대로 집중을 할 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사무실에 남아 야근을 하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다. 그저 빨리 집에 들어가 쉬고만 싶었다. 다른 직원들도 하나씩 인사를 하며 사무실을 떠나...
“아직도 화났냐?” “닥치고 그냥 가라.” “닥치라니, 너 아무리 그래도 삼촌한테,” “삼촌이 삼촌 같아야 대접을 하지, 안 그래?” 할 말이 없어진 영우는 입을 다문 채 룸 미러로 뒤에 앉은 세주를 살폈다. 무표정한 얼굴은 여전히 고집스럽게 창밖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 욕이나마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인가 싶기도 했다. 어제 호텔에서 돌아온 이후로 ...
“…… 어요. 지금…… 있으니까…… 깨는 대로…… 네, 그럼.” 몽롱한 정신의 틈을 비집고 드문드문 말소리가 들려 왔다.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온통 하얀 이불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다시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영우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눈을 몇 번 감았다 떴다. 낯선 방이었다. 으으으. 그는 신음을 뱉으며 머리가 울리지 않게 천천히 몸을 반...
작정을 하긴 했지만 너무 마셨다.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는 있으나 그리 오래 버틸 수는 없으리란 본능적인 느낌이 왔다. 이미 눈앞의 물체가 둘, 셋으로 퍼져 보이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환청처럼 느리게 들렸다. 영우는 슬그머니 가게의 기둥에 몸을 기댄 채 사람들이 하나둘 인사를 하며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빨리들 좀 가라.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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