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로 이런 걸 먹어서 될 일이 아닌데.” 하경이 윤수의 밥그릇 앞에 수저를 놓으며 혼잣말을 했다. 어제와 같은 반찬에 기름을 뺀 캔 참치를 담은 접시가 추가되어 있었다. “왜, 나 참치 좋아해.” 윤수가 밥을 한 숟갈 크게 입으로 떠 넣으며 말했다. 죽은 이제 그만 먹어도 되겠다고 하경의 허락이 떨어진 참이었다. 윤수의 흰소리에도 하경은 좀처...
***** 창의 바깥쪽엔 나뭇가지며 이파리들이 엉망으로 붙어있었다. 희미한 달빛 아래 어스름히 드러난 수풀은 거세게 불어대는 바람에 그저 속절없이 나부끼고 있었다. 밤이 되자 비는 조금 잦아들었지만, 바람은 어쩐지 더욱 과격해지는 것만 같았다. 윤수는 침대에 앉아 그 난잡한 광경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그 모양이 꼭 지금 제 속만 같았다. 자겠다 마음먹고 누...
***** 소리가 꽤 맹렬했다. 윤수는 무의식적으로 칫솔질을 하며 욕실에 딸린 작은 창문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날이 밝으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붓고 있었다. 이러다 집 떠내려가는 것 아닌가. 윤수는 새삼 좁은 욕실 안을 두리번거리며 생각했다. 욕실이라고 해봐야 수도 시설도 없으니 물이 담긴 큰 대야와 바가지 정도만 있는 ...
“아아, 모처럼 예쁘게 잘 꿰맸었는데…… 이게 뭐예요, 아깝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윤수를 눕힌 하경은 상처부터 들여다봤다. 그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엉망이 된 피를 닦아냈다. “다행히 생각보다 많이 터지진 않았는데, 그래도 빨리 재봉합 해야 해요. 지금 마취약 넣긴 했는데 퍼질 때까지 기다릴 시간 없으니까 그냥 할게요. 아파도 좀만 참으세요.” 하경...
***** 밤새 한숨도 자지 않은 윤수는 침대에 누워 어스름히 동이 트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밤의 산속은 위험하니 최대한 해가 있을 때 산을 내려가야 했다. 얼마나 깊은 산인지 알 수도 없고, 어차피 도망칠 것, 하경에게 들켜서 좋을 것도 없었다. 여기서는 연락할 수단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의 말을 다 믿을 수도 없으니 사라졌다는 소식이 신일회의 귀...
***** “일단 물부터 충분히 마시고 시작하세요. 아무리 죽이라도 너무 오랫동안 빈속이었으니까......” 윤수의 앞에 테이블을 놓은 뒤 하경은 하얗고 멀건 죽이 담긴 그릇과 물잔, 그리고 숟가락을 차례대로 놓았다. 그는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자신이 하는 모양만 그저 바라보고 있는 윤수를 한번 쳐다보더니 침대 옆 바닥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까의 남자가 담배...
“어차피 돈이면 다 하는 새끼 아니었나?” 남자가 비열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왜 이렇게 빡빡하게 구실까. 보스 신경 쓰이시게......” “내가 왜 조폭 새끼들 기분까지 신경 써야 하는 거지?” “조폭이라...... 우리가 조폭은 아니지 않나?” “조폭이든 마피아든. 설사나 똥이나.” 하하. 남자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연신 피식피식 웃으며 주머...
***** “근데 너는.” 윤수가 제 허리의 상처를 열심히 닦아내고 있는 재경을 불렀다. 재경이 형식적으로 고개를 살짝 쳐들었다. “전화도, 전기도, 인터넷도, 뭐 아무 것도 안 되는 여기서 뭐하는 건데?” 윤수의 물음에도 재경은 별다른 대꾸 없이 묵묵히 상처를 닦아내기만 했다. 윤수가 그런 재경의 얼굴을 살폈다. 그저 무심하기만 한 표정이었다. “나 고치...
***** 어디선가 아련히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슬며시 눈을 떠보니 창밖은 아직 어스름한 것이 동도 트기 전인 것 같았다. 윤수는 남은 잠을 털어내듯 길게 숨을 한번 내쉰 뒤 습관처럼 사지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어느새 오른 팔을 들어 올리는 것은 한결 쉬워졌고 허리나 배에 힘을 주었을 때에 오는 통증도 확실히 많이 줄었다. 그런데 그때 아래쪽에 무언가...
***** 가볍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선잠에서 깬 윤수가 천천히 눈을 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슬쩍 잠이 든 것 같은데 어느새 방안이 어두워져 있었다. 잠시 창밖에 시선을 두는 사이 남자가 안으로 들어와 방안 곳곳에 놓인 랜턴을 켰다. 제게로 다가오는 그의 손에 대야가 들려 있었다. “좀 주무셨어요?” 남자가 대야를 바닥에 놓고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어떻게든 눈꺼풀은 겨우 들어 올렸으나, 시야가 흐려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었다. 초점을 맞추어보려 눈을 몇 번 끔뻑여 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전신을 덮치는 극심한 통증 때문에 도로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몸을 뒤척이자 이번에는 대번에 오른쪽 옆구리 쪽에 불편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윤수는 거칠게 호흡을 내쉬며 살짝 고개를 세워 주변을 살폈다. 작은 방...
공항의 활주로는 길이가 매우 짧은 편이다. 은재는 출발 전 읽었던 가이드북의 구절을 떠올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비행기를 탄다, 라는 행위에 동반되는 모든 것들을 싫어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륙과 착륙의 순간이 가장 싫었다. 그는 고막을 파고드는 무자비한 소음과 온몸을 뒤흔드는 진동을 견디려 이를 꽉 물었다. 과연 짧은 활주로라는 건 빈말은 아니었는지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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